이글루스 로그인


미친키스를 보고 나서.

 

대략 2주전 미친키스를 보았다. 대학 다닐 때 미대에서 하는 공연을 본 이후 2번째 보는 공연이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대부분의 내용을 까먹고 있었으나, 공연을 보는 도중 새록새록 생각이 났다. 아, 저 역할이 한나가 하던 역할이구나, 저것은 임경이, 저것은 세진형이 하는 식으로. 

다시 본 미친키스는 이전에는 몰랐던 느낌들을 안겨주었다. 사실 첫 번째 미대에서 하는 미친키스에 관해서는 '무대가 깊었다'는 사실과 세진형이 감초 역할을 참 맛깔스럽게 하였다. 여동생이 마지막에 죽는다. 그리고 '발을 사랑해 달라는' 여자가 등장한다는 사실 밖에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작품 이해도가 떨어졌다는 말일 것이다. 다시 본 미친키스는 27살의 나에게도 아직은 이해하지 못할 부분과 대사들이 많이 있었으나 대략 5년 전의 나보다는 많은 것을 들을 수 있는 공연이었다.

 

일단 무대는 그리 깊지 않았다. 침대와, 벤치가 있는 나무와, 테이블 하나가 무대를 구성하는 대품이었다. 조광화씨 작의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육체에 집착한다. 한 길 속을 모르는 사람의 마음에 불안함을 느끼는 조광화의 남자들은 (거짓 오르가즘을 파악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즉각적인 이해가 가능하고, 그 따뜻함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육체로 하는 대화'에 집착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는 너의 속을 모르겠어서, 너의 마음을 모르겠어서, 너를 가지기를 원한다고 절규한다. 남자 주인공 장정의 히드클리프 예찬은 사랑받고 싶으나 사랑받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떠는 어린아이의 자해와 자기 연민적 파멸을 위한 열정의 예찬이다.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여주인공인 신희를 가르치고 있는 인호는 아내와의 사이에서 느끼고 있는 몰이해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젊은 여자들을 전전하며 그들의 육체를 탐한다. 답답한 한계를 가진 남자 주인공들을 보며 조광화가 하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일지를 한참 생각했다. 그들은 대체 연인에게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어하는가.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이라는 미묘한 존재에게 날카로운 안테나를 세운 채로 자신을 항상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소통이 가능한 존재를 찾고 싶다는 욕망인가. 그러면서 상대에게 무관심한 그들의 모습은 무엇인가. 거친것이 싫다고 내지르듯 말하는 신희에게 장정이 보인 반응은 무엇이었던가.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상대방을 숨막힐 듯 끌어안고 격렬한 몸부림으로 사랑을 표현해야만 상대가 만족할 것이라는 수컷들의 오래된 미신적 신념인가.  

조광화는 이 극에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의 형상화에는 실패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장정의 여동생 은정외에는 작가는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다. 여주인공 신희는 아직 직장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전공도 그저 그렇고 미래를 찾지 못한 채 대학원에 몸을 맡기고 있는, 시간을 유예하기 위한 도피성 유학을 꿈꾸고 있는 여자이다. 그는 아내와의 사이에서 몰이해라는 생활의 고통을 받고 있는 인호와의 덧없는 사랑에 몸을 맡긴다. 그 이유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신희의 선택은 적어도 나에게는 개연성 없는 것으로 보이며 그의 존재가 극에서 어떤 역할을 가지는지 (남자주인공 장정의 집착의 대상으로서 하나의 사물이 되는 것을 제외한다면) 나는 알 수가 없다.

 

장정의 여동생 은정은 모든 일에 자신이 없고, 진득하게 한가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왜 못하냐는 질책에는 나는 원래 못해, 안되는걸 어떡해라며 징징대고 그럴 바에 나가 죽어버려라는 호통에는 죽을꺼야 라며 징징댄다. 오빠(장정)가 어렵사리 당선된 시나리오 덕에 받은 상금(아마 그 1회로 그친 채 다시는 당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큰)을 (아무 각오 없이)어설픈 욕구로 다닌 연기학원에 모두 날리고 이를 질책하는 오빠에 대한 부담감과 자기 자신을 스스로 세우고 비끄러매는 것에 힘겨움을 느낀 나머지, 그러한 자신을 포기하고 낯선 남자의 손길에 몸을 맡기는 창녀가 되는 인물이다. 굉장히 의존적인 존재. 그녀는 인호가 자신의 공허를 지우고 죽어버린 열정을 비루한 방법으로나마 찾고 싶은 나머지 싸늘하게 식어버린 자신의 몸뚱아리에 손을 대지 말고 자신을 흥분시켜 보라는 무리한 요구를 함에도, 이에 응하여 싸구려 냄새가 나는 언어로 인호를 유혹하는 과정에서 진심으로 자신의 외로움과 끝없는 절망감을 드러내게 된다. 자신의 절망과 외로움과 맞닿아 있는 은정의 어두움을 알게 된 인호는 은정을 끌어안고 그 외로움을 달래주마 속삭이게 되고, 이 모든 정사의 과정을 장정은 그가 동생에게 설치해 놓은 도청장치를 통해  듣고 있다. 은정은 인호로
대표되는 남자들로부터 받은 돈으로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명품을 사들이고 창녀가 된 동생을 모른척 하려던 장정은
잔인한 분노를 표출하며 그 모든 것을 내동댕이치다 이윽고 칼을 집어들고 은정의 앞에서 배게의 배를 가른다.
 
인호의 부인, 영애는 언제부터 발에 대한 페티시즘을 갖게 되었을까. "내 발을 사랑해줘" 그 한마디에 어김없이 관객들은 웃었다. 관객들이 웃는 이유는 자신은 그러한 변태적 집착에서 자유롭기 때문일까, 자신또한 그 범주에 속해 있다는 자조적 웃음일까, 어색함을 무마하고자 하는 정치적 제스쳐일까, 호기심에서 비롯된 천진난만한 웃음일까. 어느 것이든 난 5년 전에도,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도 관객들의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적어도 그러한 측면에 있어서는 사람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 추측되는 '어이없음'에서 비롯된 웃음. 그것이 내가 받아들인 그 웃음의 의미이다. 그녀는 극도의 외로움에서 장정이라는 인물에게 자신과의 비밀스런 만남을 남편의 사생활 조사 보고라는 허울로 가장한 채 열정적으로 임해줄 것을 주문한다. 고용주라는 이름으로. 그녀는 자신의 발을 사랑해 달라며 발목을 쭉 편채 장정의 얼굴앞에 들이밀 때부터 이미 'S' 의 자질을 표출한다. 그러한 S가 이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는 인호와의 관계를 제대로 이어나갈 수 있을리 없다. 이 여인은 막의 중간쯤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인물 X 에게 마치 여왕과 같이 자신의 발을 맡긴다. 헌신적인 구두 가게의 점원과도 같이 그녀의 발을 이 세상 대단한 보물을 대하는 양 어루만지는 X를 곁에 두고 그녀는 신희에게 절망하고 동생에게 상처받으며 자기 스스로 진실을 마주보기를 두려워하는 장정의 절규를 그 효용이 소멸한 물건을 대하듯 가볍게 거절한다. 그녀가 자신의 발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인호와 연애하던 시절, 더러운 계단 밑에서 남이 볼까하는 두려움이 남이 볼지도 모른다는 달뜬 흥분으로 모순되게 변화하는 것을 느끼며 짧고도 강렬한 정사를 가졌던 그 때, 흙탕물에 더러워진 자신의 발을 빗물로 깨끗이 씻겨주던 인호의 손길이 그 원인이었을까? 오랜 세월이 지나 날이 밝을 때 찾아가 본 그 계단의 모습이 아무리 좁고 더럽고 비루한 곳이었다고 해도 열정이라는 콩깍지가 이성을 지배하던 그 때 더러워져 아무에게도 주목을 받지 못하였을 자신의 발을 씻어주던 인호의 손길, 그 한계를 모르는 사랑의 손길이 그녀의 남은 인생을 지배하는 성적 취향의 근본이라 하여도 납득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발에 대해 집착하게 된 것이 과연 그 때였을까. 극에는 드러나지 않은 그녀의 과거, 알 수 없는 그녀의 경험이 그 근본원인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늙어만 가는 육체에 대한 두려움, 다시 살릴 수 없도록 죽어버린 남편의 열정의 불씨, 새로 만든 애인 대용품의
불성실함, 미지의 인물 X. 영애는 조광화가 그다지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지 않았지만 비교적 알기 쉽다. 그녀 또한 불쌍한 존재라는
점에선 다를 바가 없다.

 


잔인하고, 잔인하고, 극은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마치 굿모닝 베트남의 피와 살이 떨어져나가는 전쟁 장면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울려퍼지는 것처럼 마지막 비극의 장면에서 배게속의 깃털은 아름답게 흩날리고 무대의 모든 조명은 환하게 밝혀져 무대 위를 내리쬔다. 그 호흡마저 정지시킬 듯한 밝음 속에서 어설프고 뻔하게 예정되었던 오해는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장정은 미친 듯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여동생의 자살을 방관한다. 죽어버린 동생을 안고 담배를 꼬나물며 자신의 몸에 키스를 퍼붓는 장정. 이제 누가 내 몸에 키스를 해 줄 것인가. 아아. 내가 하겠다. 내가 내 몸에 키스를 하겠다. 그 독백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파멸적 인간의 혐오스런 구토이다. 그 마지막 순간에도 자기애를 버리지 못하고, 남을 보지 못하고, 자기애를 버리지 못하고, 자기 연민을 버리지 못하고. 불쌍한 것. 자기 연민의 독과 그 찌질함과, 그 함정과, 그 모순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장정의 그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 보였다. 넌 정신적 나이가 몇 살이니?

 

서로의 관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각자가 끝없는 자기애를 표출하며 극은 끝난다. 자살도, 좌절된 사랑의 도피 행각도, 미지의 남자와의 바람도, 자신의 몸에 키스하는 것도. 서로에게 닿지 못하고 자기애와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들의 허무한 발악이다. 그 발악의 끝에는 관객에 대한 물음이 있다.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 등장인물들의 뻔한 한계와 그 이야기 풀어내는 방식의 전형성에도 불구하고 배우의 머리 위에서 바로 내리쬐는 조명과,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잃지 않는 배우들의 패기와, 비록 남성에게 좀 더 치중하기는 했지만 꽤나 적절히 배우들에게 분배된 역할의 비중이 극을 끌어가는 가장 큰 힘이라 생각하였다. 관계에 대해 난 절망하고 싶지 않다. 이 연극이 보여준 현실만이 진정한 현실은 아니니까. 게다가 또 누가 아는가 바닥의 바닥까지 내려간 장정이 가장 밑바닥 진흙창으로부터 다시 한번 기어나올지. 정신 이상이라는 손쉬운 도피가 훨씬 그럴듯 하지만 말이다.


<사진 출처 : 엠뮤지컬컴퍼니>

by 불안정한神 | 2007/10/22 13:35 | 흥미에 따른 책, 공연, 영화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Alekino.egloos.com/tb/89892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